무색무취의 명품

보드카, 넌 누구냐

쿵짝쿵짝. 오늘은 외국의 국빈이 방문하는 날입니다. 저는 국빈 방문 기념 오찬 자리에서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의 지휘자죠. 멋있는 음악을 연주하던 그 순간, 휙! 누가 지휘봉을 뺏어갔습니다! 이런 어이없는! 누구야?! 어라? 이분은 국빈이신데? 술을 잔뜩 드시고 취해서 제 지휘봉을 뺏어 버렸어요. 😭

이 일화는 실제로 러시아 초대 대통령 옐친이 독일을 방문해 오찬 자리에서 벌인 요란스러운 사건입니다. 옐친이 자신이 사랑하는 ‘이 술’을 진탕 마시고 벌인 일이라고 하죠. 얼마나 좋아했으면, 얼마나 마셨으면 악단 지휘 이후 근처 공연장에 난입하여 신나게 춤도 추셨다네요😎. 이 술을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요? 옐친이 사랑하고, 러시아가 사랑하고, 전 세계가 사랑하는 바로 그 술은 무엇일까요? 오늘 해볼 이야기는 우아함과 깨끗함이 공존하는 술 보드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라는 꿈을 꿨습니다😝. 꿈에서나 있을 법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 상상만 해도😰 제 간 수치가 놀라서 벌렁거리네요. 간 : 휴우 살았다. 하지만 실제로 과거 미국🇺🇸에서, 위와 같은 법이 실제로 시행된 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오늘 해볼 이야기는 이전 에피소드에서도 자주 언급되었던, 술의 흥망성쇠에 빠지면 섭섭할 ‘미국 금주법 시대’입니다.

보드카 넌 누구냐

일단 보드카가 어떤 술인지 알아보죠. 보드카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무색, 무취, 무미의 술’입니다. 잠깐, ‘무색, 무취, 무미’하면 또 뭐가 있죠? (잠깐 멈추고 생각하기🙄🙄🙄.) 정답은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입니다.
갑자기 물이라고? 무슨 연관이 있나? 설마, 알코올에 물을 타면 보드카인가??
당연히 아니죠! 바로, ‘물’이 보드카의 어원입니다. (그렇다고 보드카를 물처럼 마시려는 사람은 없겠죠?) 러시아어로 ‘VODA’, 폴란드어로는 ‘WODA’가 물을 뜻하고, 이 어원이 곧 보드카라는 단어가 되었답니다. 이러한 어원 때문에 폴란드에서는 보드카를 ‘와드카’라고 부르기도 한다네요. 보드카가 뭔지 조금만 더 알아보죠. 보드카는 다른 술과 같이 발효와 증류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다만, 다른 술들은 원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리는 반면 보드카는 맛과 향을 지우기 위해 챠콜(숯) 필터를 거쳐 오직 순수한 알코올만을 남기죠. 보드카는 이런 특징 덕에 칵테일🍸의 베이스로 자주 활용됩니다. 맛있는 음료에 보드카만 부어버리면 칵테일이 뚝딱! 외국에서는 대용량 화채를 만들고 보드카 여러 병을 투척해 파티 음료 ‘펀치’를 즐기기도 하죠. (취하는 화채라니 궁금하네요😁) 보드카는 이러한 활용도와 매력 덕에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될 수 있었답니다.

보드카 : 나 가지고 그만 싸워

2017년 유럽 알코올 벨트. 하늘색이 보드카 벨트, 노랑색과 붉은색은 각각 맥주, 와인 벨트 @wikimedia.org

보드카가 워낙 매력적인 친구다 보니 보드카를 사이로 둔 논쟁도 잦았는데요. 그중 파장이 컸던 첫 논쟁은 보드카로 유명한 러시아🇷🇺를 대상으로 보드카 종주국 중 하나인 폴란드🇵🇱가 “우리가 원조다!”라 주장한 보드카 원조 논쟁입니다. 이 논쟁은 국제 재판으로 넘어가 치열한 공방이 계속됐는데요.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이 싸움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승자 없는 싸움’으로 끝나버립니다.😒 왜냐하면, 최초로 제출한 자료는 명료했지만 이후 모호한 자료들이 계속되었고, 다른 나라들의 의견도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에잇 재미없어

2003년, 프랑스가 포도🍇로 만든 보드카 CIROC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논쟁이 한 번 더 발생합니다. 이 제품이 무시할 수준이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시장 반응이 꽤 좋은 게 문제였죠. 그러면서 심기가 불편해진 보드카 벨트(보드카 주 수출국)에 속한 국가들은 “보드카는 곡물로 만드는 것이므로 포도로 만든 제품은 보드카라고 팔면 안 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세계 보드카 시장에서는 보드카 벨트의 국가의 힘이 강력했기 때문에 프랑스의 힘든 싸움이 될 게 뻔했죠. 하지만 프랑스🇫🇷는 용감하게 맞서 싸웠습니다. 너네 증거있냐?!😤

증거 있지! 아마도...?

프랑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선 ‘보드카는 곡물, 당밀, 감자로 만들어야 한다’의 증거를 보드카 벨트에서 딱! 내놓아야 하는데, 엥? 없네? 진짜 없어?🫢 어이없지만 보드카의 재료에 대해 규정해놓은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프랑스 편에 들고 싶었으나 눈치만 보던 다른 국가들도 싸움에 합류하면서 유럽은 난장판😵‍💫이 됐습니다. 프랑스의 외로운 사투는 어쩌다 보니 보드카 생산 후발주자와 선발주자들의 싸움으로 번져버렸죠. 심지어 후발주자에는 미국🇺🇸을 포함한 아메리카 대륙까지 포함됐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무역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FINE FRENCH GRAPES라고 표기된 CIROC

이 논쟁은 국가의 마케팅 수익과 더불어 민족 간의 자존심이 달린 만큼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폴란드에서는 “그게 보드카면 살구로 만든 위스키도 위스키겠네!”라고 말할 정도로 싸움이 격양되었죠. 이 질풍노도의 시기는 2007년 독일 정치인 슈넬하르트가 보드카의 재료를 규정한 ‘슈넬하르트 조정안’을 제시하고 이에 모두가 동의하며 막을 내립니다. 발효만 되면 뭐든 보드카를 만들어도 되지만, 곡물, 감자, 사탕무, 당밀 외의 재료로 만든 보드카는 원재료를 표기하기로 약속! 다행히 해피엔딩~🤗

전 세계가 사랑하는 무색, 무미, 무취의 보드카는 순수하고 투명한 모습 속에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은 보드카의 간단한 소개로 시작하여 러시아와 폴란드의 보드카 논쟁, 그리고 프랑스 보드카를 둘러싼 소동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왜 이렇게 보드카의 주변은 시끄러웠는지, 제가 만약 보드카였다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올해는 술 좀 줄여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냉동실에 넣어둔 보드카를 만나 고생했다고 말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기다려 보드카야, 내가 위로해주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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